"사장님, 이거 재료비만 따져도 메뉴판 가격이 말이 안 되는데요?" 작년 11월, 상수역 근처 골목에서 3년 버티다 문 닫은 술집 구석에서 내가 던진 말이야. 사장은 쓴웃음만 짓더군. 그 가게는 하이볼 한 잔에 8천 원을 받았는데, 정작 쓴 위스키는 이름 없는 저가형 블렌디드였고, 무엇보다 진저에일 대신 탄산수와 설탕 시럽을 섞어 썼지. 뻔한 눈속임인데 손님들이 모를 거라 생각한 게 패착이야.
홍대 상권에서 2023년 한 해 동안 사라진 업소들을 관찰해보면, 공통적으로 '객단가 강박'이 있었어. 인건비랑 임대료가 치솟으니까 어떻게든 마진을 남기려고 메뉴는 늘리고 원가는 줄였지. 특히 칵테일 바들이 많이 그랬어. 기주를 싼 걸 쓰면서 라임 즙은 팩 제품을 쓰고, 가니쉬는 냉동 과일로 대체했지. 자세한 내용 보기를 통해 보면 알겠지만, 이런 유흥 상권 정보는 사실 발품 팔아 메뉴판 뒷면만 봐도 견적이 나오거든.
그 와중에 살아남은 곳들은 전략이 정반대였어. 서교동 골목 끝자락에 있는 작은 바 하나는 메뉴판을 딱 5개로 줄이더라고. 대신 그 5개 메뉴에 들어가는 재료는 공수처를 다 바꿨어. 기성품 시럽을 쓰는 대신 바텐더가 직접 바닐라 빈을 졸여서 베이스를 만들고, 얼음은 투명한 대형 아이스 볼을 직접 깎아서 내놨지. 손님이 메뉴 하나를 시켜도 "이게 왜 이 가격인지"를 납득하게 만드는 '경험의 밀도'를 높인 거야.
실패한 곳들은 늘 "요즘 애들 입맛이 변해서"라며 탓을 돌려. 하지만 막상 가서 먹어보면 위스키는 에어레이션조차 안 되어 있어 알코올 향만 튀고, 안주는 냉동 식품을 에어프라이어에 돌려 내는 수준이지. 손님들이 바보인 줄 아나 봐. 내가 단골로서 사장님들 원가 계산해 보며 느낀 건, 망하는 가게는 늘 원가율 20%대를 맞추려다 퀄리티를 깎아 먹고, 살아남는 곳은 원가율 40%를 감수하고서라도 '이 집 아니면 안 되는 맛'을 구현해.
사실 상권 분석이니 뭐니 하는 거창한 이론보다는, 오늘 밤 퇴근길에 네가 단골로 가는 술집 주방을 한번 유심히 봐봐. 식자재 박스가 어디 건지, 사장이 직접 재료를 손질하는지 아니면 봉지 뜯어서 데우기만 하는지 말이야. 그게 바로 네가 그 가게에 돈을 쓰고 있는지, 아니면 사장의 무능함을 대신 메꿔주고 있는지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거다. 다음에 술 한잔하러 갈 때, 딱 한 가지만 물어봐. 오늘 들어온 식재료 중에 가장 자신 있는 게 뭐냐고. 대답 못 하는 사장이라면, 그 집은 곧 문 닫을 곳이니 미련 갖지 말고 빨리 나와.